후쿠야 90년의 발자취

1930~40년대

히로시마의 쉼터로서 사랑받는 백화점으로

1932년 개설된 후쿠야 10전(錢) 스토어

1932년 7월 15일, 혼도리와 긴자가이를 잇는 호리카와초에 “후쿠야 10전 스토어” 개점. 일용 잡화와 식료품을 중심으로 저가 상품을 진열해 큰 인기를 끌었으나, 물가 상승과 저가 상품 입고에 곤란을 겪으면서 1937년에 폐점했습니다.

1935년 3월 31일자 주고쿠 신문에 게재된 구레점 개점 광고

1935년 4월 1일, 후쿠야 구레점이 오픈되었습니다. 당시의 구레는 동양 제일이라 불리던 군항과 해군 조선소로 크게 발전. 인구도 23만 명까지 증가했습니다. 같은 해 11월에는 구레선이 전선 개통. 이러한 다양한 요인들로 인해 구레점도 큰 번성을 이루었습니다.

늠름한 백악의 전당 핫초보리에 신관 완성

1937년 7월 10일 오사카 마이니치 소학생 신문 공사 중에 출토된 조개 화석 기사

1938년 신관 개점을 알리는 포스터

후쿠야 신관 개점을 알리는 포스터에는 당시의 인기 배우인 다카스기 사나에 씨를 모델로 기용. 이러한 화려한 선전 덕분에 오픈 시에는 백화점 안팎으로 수많은 고객들이 성황을 이루었습니다.

1938년 후쿠야(신관)

1938년 3월, 1년 10개월의 공사 기간을 거쳐 “여러분의 후쿠야”가 현 소재지인 핫초보리에 완성되었습니다. “백악의 전당”으로 사랑 받으며 눈길을 끌었던 후쿠야 신관은 지하 2층, 지상 8층의 늠름한 건물이었습니다.

히로시마시에 원자폭탄 투하

1945년 가을 피폭 1개월 후의 후쿠야(앞쪽이 구관, 뒤쪽이 신관) 촬영: 하야시 가즈마 제공: 히로시마 평화기념자료관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한 발의 신형 폭탄이 히로시마시 상공에서 터지면서, 히로시마는 순식간에 괴멸되었습니다. 원자폭탄의 참화를 맞은 히로시마에서 후쿠야 신관(사진 뒤쪽)과 구관(그 앞)은 겨우 그 일부만을 유지하는 데 그쳤습니다.

1945년 후쿠야 옥상에서 내려다본 가미야초 촬영: 하야시 가즈마 제공: 히로시마 평화기념자료관

피폭 1개월 후. 우측 상단 건물은 히로시마 상공회의소. 좌측 상단 오른쪽은 히로시마 은행 본점, 왼쪽은 스미토모 은행, 가운데가 이전의 히로시마현 산업장려관(원폭 돔), 맨 앞 건물은 당시의 상공중금 빌딩.

피폭, 그리고 부활까지 폐허 속의 재건

종전 후 복구된 정면 현관

피폭 후인 1946년 2월에 1층 부분만 정돈하여 영업을 재개한 후쿠야. 이후 순차적으로 각 층을 복구하여 1950년 10월에는 1층과 2층으로 매장을 확장하고, 1951년 7월에는 4층 복구 공사를 마침으로써 절반 정도가 회복되었습니다. 또한, 같은 해 10월에 5층이 복구됨으로써 전쟁 전의 매장 면적을 회복.그리고 마침내 1954년 12월에 나머지 층도 공사를 완료함으로써, 후쿠야는 전관 복구를 달성했습니다.

FUKUYA Co. Ltd.